The Decisive Moment : [Part 2] 수직적인 위로
Photo 2010/05/30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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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현실이 그것으로서 도달할 수 있는 하나의 예술적 형태, 극도로 정교하며, 극도로 오래 정제된 무대 위의 한 장면을 닮아 있다. 그것은 우리가 도달할 수 있는 현실 이상(異象)의 소묘적인 뉘앙스를 담고 있으며, 그것도 셔터 스피드의 절박한 움직임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비루한 일상 자체의, 그것의 간헐적이고 은밀한 속삭임으로부터 직접 빚어지는 것처럼 보인다.
때문에 이 고양이 남자의 가치란 그가 결코 인위적으로 생겨나지 않다는 데에서 이미 충분하고도 남는다. 그리고 그것이 다른 이들보다 덜 환영받고 이해받는 이유도 그러하다. 원급법이 가리키는 소실점의 극명한, 어떤 면에서는 매우 초보적인 영감(靈感)의 비탈들은 감추는 바가 없다. 끝으로부터 중심에 이르는 길목에 자리한 피사체의 견고한 대립항들, 역사와 시간과 배경의, 심지어 제목마저 지시하는 효과들과 경고들까지도 매우 명백하다. 그렇다. 여기엔 누구나가 알아볼 수 있는 선명한 쓰라림이, 이바노비치 튜체프(Fyodor Ivanovich Tyutchev)의 모든 잉크를 날려버릴 고독1이 있으며, 동시에, 누구나 한번쯤 그려보았을 옅은 향수가, 위대한 나타나엘의 손짓2이, 빗면의 한 점에 스며드는 아쉬운 창락(暢樂)이 있다. 말하자면 그것은 지나치게, 요컨대 재미없을 정도로 솔직하다.
그럼에도 내가 이 작품을 아주 좋아하는 이유는, 단 한 번, 아주 우연스럽게도, 앞선 까마귀 남자와 이 고양이 남자가 연속되어 나란히 전시된 경우를 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그 날 이후로, 이제, 말하자면 까마귀 남자의 수평적인 가로지음은 여기에서 정적으로 전환된 열려있는 수직적인 단절과 함께, 익숙하고도 친숙한 우화적 오브제들의 슬픈 이야기, 어른들을 위한 동화의 한 장면을 위해 잠시 멈춰있는 것이다. 그를 자신의 오른편에 자리잡은 광휘의 직선으로부터 떼어내어, 자신을 바라보는 작고 연약하며 충만한 연인들 -- 고양이는 두 마리다 -- 의 그늘 아래에 잠시동안 머무르도록 허락해야 한다. 그리고 그때, 그의 움츠린 어깨를, 그의 정적인 신발들을, 수평의 길들을 막고 서 있는 눈부신 장애들을 보라. 그의 앞에서, 모든 겸손과 신성으로, 수직의 원근법적 항로를 오르내리는 걸음을 멈추고, 그를 위로하는 작은 무리를 보라. 그의 떠남을 지켜본 이들은, 불가해한 가로지음에의 현실적인 맺음말까지 발견할 수 있으리라! 그들의 익명적인 슬픔과 위로가, 제한된 휴식과 순간의 머무름이 지닌 본연의 무게가 나타난다. 심지어 이 고요한 동반자들은 서로의 영역을 더 이상 침범하지 않도록, 각자의 의무나 예의를 위해서가 아닌, 보다 순수한, 동족적인 본성의 경계들을 넘어서서, 서로를 그토록 껴앉지 않도록 애쓰고 있다. 그들로 인해 우리 또한 그럴 수 있다 -- 그러나 우리는 그들이 재차 나아감으로써 우리에게 좀 더 다가오기를, 그게 아니라면, 차라리 이 경계를 넘어서, 우리가 그들에게 다가기를 빌 것이다. 그들을 재차 보듬을 수 있길, 그들이 서로에게서 갓 벗어난, 수줍게 감추려고 하는 상기된 몸짓을, 환대의 눈짓을, 일말의 어색함까지도, 우리에게 나눠주길 바라 마지않는다.
그 소망의 예견된 실패가 밝혀지더라도 남은 보상은 좌절이 아니다. 그러기엔 이 고양이 남자가 그리는 벌거벗은 감정들의 지표가 너무나 착실하니까. 그것은 되레 작은 인사말을 건넨다. 그리고 모두는 언젠가 되돌아올 샛길들로 걸어나가는 것이다. 파리의 나무들 사이로. 어쩌면 그리스의 회절된 흑색 난간들 사이로.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