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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Decisive Moment : [Part 1] 수평적인 가로지음







Behind the Gare St. Lazare, Paris, 1938.
Images Copyright © 1938 Henri Cartier-Bresson


  카이스로적 이미지들이 갖는 힘은 모든 이들에게 익숙하다 -- 그리고 이 작품은 다른 어떤 것들보다 더 익숙하다. 다른 이들의 이유가 무엇이건간에, 내가 이런 류의 이미지를 좋아하는 이유는 거기에 우리 지각의 익숙한 한 단면을 벗어난 어떤 것이 들어있기 때문이며, 내가 이 작품을 좋아하는 이유는 다른 모든 이미지들을 더한 것만큼이 그 안에 담겨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현실의 조각난 단편들이 아니라, 오히려, 어떤 방식으로 우리가 비현실적이라고 불러 마지않을, 무언가로서 거기 있다. 그것은 주장하지도 설명하지도 의미하지도 않는다 -- 마찬가지로 그것은 침묵하거나 묵도하거나 무심하지도 않는다. 그것은 그들 각자가 멈춰서야만 하는 지점을 새겨놓은 석판과도 같다. 사상(事狀)의 정지. 조작되지 않는 운동들. 법칙과 실용과 운명을 떠난 세계.

  나는 모든 이들이 어느 정도 그러한 감상을 느끼리라 믿는다. 처음의 심정은 도약하는 한 남자 정지된 역동과 수면에 비춰진 기시감, 그들을 잇는 수면=거울의 고요함에 의해 탄생하며, 그것은 이들이 저 뒤편에 꿈처럼 서 있는 또 하나의 도약과 맺는 순수하고 아름다운 비례에 의해서 성숙된다. 호를 그리는 수식(修飾)들이 곧 그것의 서사적 결말을, 시적 형식을, 희극적 반향을 결정지어 간다: 보라, 우리의 삶은 그러한 극점들을 언제나 숨기고 있노라고. 단지 우리의 편향된 경험과, 질투어린 낫을 든 크로노스가 그를 가로막고 있노라고.

  하지만 그 완성은 귀결된 이미지의 형식을 수평적으로 가로짓는 그의 대담하고도 순진한 자태에 있다. 수직성을 내포한 도약, 법칙과 현실의 이상성으로부터의 도피가 아닌, 제 어린시절의 골목을 노니는 아이처럼, 태어난 이래 최초로, 평생의 3년 동안의 날갯짓을 허락받은 본성상 만족스런 새처럼, 그 자신만큼 순진하고 또 유일한, 온갖 비밀과 제약들이 숨겨진 담벼락 사이의 길을 가로지르는 것. 규칙들에 거스르는 것이 아닌 규칙들 사이를 유영하는 것. 걱정하지도 혹은 노력하지도 않으며, 알고 있었던 적도, 알고 있지도, 알게 되지도 않을 움직임으로 단 한순간에 그들을 지나치는 것. 거기에 모든 것이 있다. 역전된 흑백 음영이 또한 그의 실루엣을 훌륭히 감춘다. 아마도 까마귀처럼. 포우(Edgar Allen Poe)보다는 길가메쉬(Gilgamesh)나 노아(Noah)의 그것처럼. 그는 이 모든 것이, 맑은 꿈과 추억이 언젠간 지나가리라 속삭이지 않는다. 대신에 그는 새로이 꿈꾸는 세계를, 정화된 추억의 대지를 선사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여전히 더불어 말하진 않는다. 그것은 비둘기의, 가축들의, 글쟁이들의, 스치는 현실의 몫이니까. 그는 비난을 피해 -- 누가 한 세계를 만들었다는 비난을 감수하고 싶어하겠는가? -- 도망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꼭 같이, 여전히 용감하고 희망 그 자체인, 기적적인 한 걸음을 내디디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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