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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trix : The problem is a choice.


[각주:1]

  95년 제작된 오시이 마모루 감독의 『공각기동대』는 여러 의미에서 『매트릭스』의 가이드 역할을 하고 있다. 이 영화는 쿠사나기 모토코라는 한 인물을 중심으로, 인간 실존에 관한 매우 깊이 있는 주제를 다루고 있다. 이 영화 안에서 실존하는 하나의 개인이란 그 개인이 지닌 고유한 기억의 개별성에 의해 자아를 부여받는다. 시간 속에서 의지를 지니고 행동하는 이성적 최소 단위인 인간-존재는 고유한 실존existence의 발견 이래로 자신을 자기 행위의 주체로서 지닐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영화 속에서 등장하는 전뇌電腦, 즉 유기체적 뇌의 모든 신호를 전기적 데이터로 환원할 수 있는 기술로 인해, 스스로의 자아를 이룰 수 있는 기억과 정보는 자기 존재의 확실성과 개별성을 보장할 수 있는 자격을 지닐 수 없게 되며, 의체議體로 인한 몸의 대체성, 수리성, 기능성은 기억과 정보라는 시스템 속에서 생성되는 자아, 넓게는 마음을 몸과 분리시킨다. 이로인해 개인은 유기체적 조건 아래 삶과 죽음을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인공적 매커니즘 아래서 매순간 스스로를 경험하는 존재로 살아가게 된다. 『블레이드 러너』에서 발견할 수 있는 레플리컨트와 인간의 공통적인 유기체적-정신적 매커니즘을 『공각기동대』의 사이보그Cyborg들은 완전한 비유기체적-네트워크 시스템, 기계공학적-전자기적 매커니즘 속에서 해석함으로써 존재한다. 그렇기에 이 사이보그들의 존재 방식은 순수하게 인공적으로 생산된 레플리컨트보다 훨씬 더 인공적이라고도 할 수 있다. 순수한 인간에게 있어서 기억과 정보를 구성하는 것은 스스로의 경험에서 최종적으로 주어지지만, 의체를 지닌 인간에게 있어서 경험은 의체에 의해 해석된 것이며, 의체에 의존하여 있다. 이는 행위를 구현하는 것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의체화한 인간이 경험한다는 것은 매순간 의체에 의해 설정된 경험을 해석하는 것이며, 행동한다는 것은 의체로 보내는 지향적 신호가 의체의 독자적 매커니즘에 의해 구체화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보다 더 중요한 점은, 『공각기동대』에서 전뇌를 소유한 인간의 기억과 정보는 네트Net라는 구조 속에서 외부화될 수 있으며, 감각적 패턴 역시 전자기적 신호 재현을 통해 번역이 가능하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유사-기억과 유사-체험, 즉 네트에 의해 보존되는 외부 기억들과 전자기적 신호에 의해 구성된 경험들의 공유 가능성은 어떠한 체험이 자기에게 직접 주어졌던 것인지 네트에 의해 병렬화된 것인지 구별할 수 없게 만든다. 따라서 그것이 현실인지 아닌지는 체험 자체가 아니라 순수한 의식적 판단에 의존할 수밖에 없으며, 이는 행위의 실제성 판단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이제 현실은 대뇌 정보와 감각의 전기적 번역, 그리고 기계공학적 수단에 의해 이중적으로 펼쳐진다. 따라서 모든 존재자들에게 동일했던 『블레이드 러너』의 현실은 각각의 모든 존재자들에 대하여 분열될 가능성을 내포하게 된다. 거기서 나타났던 인간 존재 조건의 비규정성은 『공각기동대』에 이르면 인간 존재 조건의 확대를 바탕으로 어느 정도 해소되지만, 그와 동시에 인간 조건에 주어져 있던 폐쇄성과 유사-인간에 대한 계층화는 각 개인의 수준으로 심화되는 셈이다. 그리하여 여기서 각 개인의 자아란 경험 — 즉 탄생에서 죽음까지의 모든 정보와 기억 — 과 행위로부터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경험과 행위 그 자체로부터 분리되어 그것을 해석하고 지향하는 순간마다 발생시켜야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시스템 속에서의 인간은 매순간 명멸明滅하는 자기 스스로를 바라보아야만 하는 존재이며 그렇지 않고서는 의체와 전뇌가 가진 매커니즘의 전개 이상도 이하도 아니게 된다. 어느 순간 자기 존재를 의식하지 않는다 해도, 인간은 자신이 가진 기억과 정보가 최소한 자신의 몸-마음을 통해 내재적으로 보존되어 있다는 절대적 사실에 의해 언제라도 자신을 복원할 수 있다. 그러나 의체화된 인간이 자기 존재를 의식하지 않는다면, 그러한 순간들 속에서 스스로를 보장할 어떠한 절대성도 지속시킬 수 없다. 여기서 자신의 정체성은 자기 외면 혹은 내면에 의한 구체적인 요소들, 즉 마음이나 몸을 통한 자기 기억, 정보, 경험, 행위 등에 기반을 둘 수 없다. 따라서 자기에게 주어져 있는 몸이 곧 자신의 몸이라는 것, 자기에게서 발생하는 마음이 곧 자신의 마음이라는 사실을 보증하는 것은 자신이 가질 수 있는 모든 의식적 요소를 초월하여 주어져야 한다.

  『공각기동대』에서 이 초월적 요소는 고스트Ghost로 불린다. 고스트란 뇌의 전자기적 신호 수준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으로 제시되지만, 실제로 그것이 뇌의 전자기적 신호에 의해 구조 해석되거나 생성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고스트가 자기 존재 증명의 근거를 위해 설정된 일종의 가상체가 아니라는 것은 그것이 실제로 발견되고 심지어 복사될 수 있다는 점에 의해 증명된다. 이는 의체와 전뇌의 시스템 속에서 끊임없이 명멸하는 스스로를 시간적으로 연속하고 있으며 공간적으로 단일하고 유일무이한 개체라는 실존적 자기 동일성을, 그 역시 전자기적 정보의 일부에 불과할지 모른다는 사실을 초월하여 스스로 믿을 수 있게 함을 의미한다. 말하자면 그것은 자기의식의 총괄체이면서도 자기의식에 주어진 것만으로 구조 해석될 수 없는 무언가로서 여기 있는 이 의식은 나라는 존재이며, 나라는 존재는 이 의식 속에서 온전히 드러나고 있다는 가능성의 기반을 이룬다.

  그러나 여기서 실존의 근거로 제시되는 것도 결국 고스트 자체가 아니라 고스트가 있다고 생각하는 믿음일 뿐이다. 고스트가 자기의식과 의식 외부의 것을 제외한 무언가라는 사실을 입증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자신이 그것을 소유하고 있다는 생각은 어디까지나 주관적 믿음일 뿐 증명할 수 있는 객관 사실이 될 수 없다. 자신의 전뇌 속에서 발견되는 고스트가 자신의 것임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자신에게 고스트가 있다는 증명을 통해 스스로가 전뇌와 의체라는 시스템만으로 이루어진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해도, 그렇게 이루어진 존재가 본래의 진정한 자신임을 알 수 있는 것은 어떻게 가능할 수 있는가? 결론적으로 『공각기동대』에서 이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이 영화 역시 『블레이드 러너』와 마찬가지로 실존의 불가해성이 낳은 불안 자체만을 묘사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사실 이쯤에서 질문은 다음과 같이 수정된다. 전뇌와 의체라는 시스템이 존재하는 상황 속에서 애초에 자신의 실존을 확신하는 것이 가능한가? 외부 기억과 정보의 공유가 어떠한 한계도 지니지 않는 시대 속에서 자신이 자신임을 확신하는 것이 정말로 그렇게 중요하며 대단한 것인가? 인형사의 말을 빌리자면, 인간은 영원히 변하는 것이며 그러한 변화 속에서 자신으로 계속 남으려는 생각, 즉 실존에 관한 집착은 자신을 제약하고 고통스럽게 할 뿐이다. 인식의 열매를 얻어 자신을 알 수 있게 된 인간은 스스로의 정체성 속에서 고민하며 순수한 존재적 감정, 즉 존재적 충만감을 상징하는 생명의 열매에 다가갈 수 없다. 오직 정체성의 틀 자체를 벗어나는 것만이 그것을 가능케 할 수 있다. 그것을 얻었을 때, 거기 있는 것은 개별적인 물질, 형태, 정신, 감정, 경험, 행위, 의식, 기억, 정보 등의 집합이 이루는 '나'가 아니다. 오직 무한한 네트로 표현되는 펼쳐진 외부와 함께, 그 전체와 동일시되는 의식이 있을 뿐이다. 그리하여 쿠사나기 모토코는 단일자로서 전체의 일부를 이루는 자신의 고정된 틀을 포기하고, 전체 구조 속으로 동화된다. 이는 실존적 물음의 해결이 아니라 실존적 물음으로부터의 해방이다. 그녀는 자기 실존의 불확실성을 불안해하고 있었지만, 그 해결 방법에 있어서 불확실한 실존 자체를 초월해 버린다. 융합한 쿠사나기 모토코와 인형사의 존재는 더 이상 하나의 개체성 속에 한계 지어지는 존재가 아니며, 전체 구조 속에 자리하여 존재 전체의 구조를 지지하는 최소 단위도 아니게 된다. 여기서 전체 존재 영역은 셀 수 없는 존재자들의 접속으로 이루어지는 네트를 의미하고, 네트의 하부 구조가 지닌 다양성에 의해 탄생하는 통합적 존재가 인형사이며, 네트에 접속하는 개별자들의 의식 모두와의 일체가 곧 융합한 쿠사나기 모토코와 인형사의 존재방식인 셈이다. 네트에 접속하는 한 그녀는 접속한 모든 존재자로부터 병렬적으로 존재한다. 더 이상 인간-존재의 의식은 외부적 구속에 갇혀있을 필요가 없으며, 각 개인의 실존의 갖는 한계를 규정할 이유도 사라지게 된다.

  그러나 모토코의 경우는 특별한 것 아닌가? 그녀가 새로운 형태의 생명으로 이행하는 것, 자신의 실존적 물음으로부터 초월하는 것은 인형사라는 특별한 존재에 의해 비로소 달성되는 것 아닌가? 인형사를 만날 수 없는 수많은 존재들은 어떻게 거기에 도달할 수 있는가? 게다가 『공각기동대』의 실존적 불안은 각 개인에게 주어지는 현존적 사실성 자체를 의심하도록 만들지는 않는다. 요컨대 여기에서 존재하는 전뇌와 의체 시스템은 유기체적-의식적으로 존립하는 자연적 인간의 개별성과 동등하게 취급될 수 있으며 양자의 유기체적-정신적 연계 또한 동등하게 지속한다. 쉽게 말하자면 거기서 의심되는 것은 현존하는 인식과 행위의 실제성이 아니라 그것이 기반한 현재화된 기억과 정보의 실제성이다. 더 쉽게 말하자면 『공각기동대』에 가상-현실은 없다. 단지 하나의 현실이 수만개의 지속들로 계열화되어 분열된 개체들의 포섭 관계로서 재정의될 뿐이다. 네트Net는 가상-현실이 아니라 현실 그 자체이다. 이 안에서 동물, 식물, 인간, 기계, 휴머노이드, 사이보그, 안드로이드, 순수 로봇, 인공지능 등등의 각 개체들은 — 선천적인 탄생 원인들이 아닌 — 고스트라 불리는 생명 원리의 궁극적 패턴에 의해서 동등하게 판단된다. 이처럼 새롭게 정의된 생명의 지속이 갖는 전체성과 그로부터 개별화된 각각의 생명체들이 서로 얽혀있는 역동적 장場, 즉 무한한 네트가 일괄적 현실의 형식을 대체한다. 따라서 『공각기동대』 네트가 일반적인 현실로부터 벗어난 독자적인 사이버스페이스를 구성하고 있지만 그것은 특정한 시스템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반反-시스템적인 특성을 갖는다고 말할 수 있다. 모토코가 보여주는 인간-존재의 실존적 해방 역시 이와 같은 현실의 일체성과 개방성을 담보함으로서 그 의미를 갖게 된다.

  하지만 만약 현실 자체가 해석된 함수 관계에 의해 단면적으로 주어진다면? 자신의 실존적 해방이 갖게 될 충족된 세계의 참 모습조차 명암을 갖는다면? 네트가 무기명적인 의지를 지니고 현실 그 자체를 복제한다면? 아마도 모토코의 선택은 단지 현실을 벗어난 가상-현실에 이르는 것에 불과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매트릭스』의 시스템이 갖는 본질이다. 기계들에 의해 창조된 신경-상호작용 시뮬레이션neural-interactive simulation, 즉 '매트릭스Matrix'는 현상appearance과 실재real의 분리를 통해 기저-현실을 통제하기 위한 가상-현실을 의미한다. 그것은 뇌에 주어지는 전자기적 신호 패턴을 분석함으로써 인간-존재의 유기체적 특성을 의식적-정신적-심리적 요소들로 완전히 환원하고, 그들에게 주어지는 현실을 조작 가능한 변수로 만들며, 의식과 외부 관계를 단일 체계로 일체화함으로서 인간-존재를 시스템에 종속시킨다. 이때 네트에서 나타났던 생명과 존재의 복합성은 단일 시스템의 구조로 대체되고, 현실은 시스템에 종속된 의식과 그러한 의식이 인지할 수 없는 외부로 갈라진다. 인간-존재가 갖게 되는 일반적인 의식과 의식-외부의 관계는 시스템의 상호 관계에 의해 통제되는 한편, 전체 시스템은 인간-존재를 현실로부터 분리시킨다. 이렇게 생성되는 가상-현실은 네트로부터 병렬화된 유사-기억과 달리 기저-현실과의 어떠한 관계성도 포함하지 않지만, 동시에 그 가상-현실 이외의 어떠한 사실도 주어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극도로 정합적이다. 그 미려하고 치밀한 수식 안에서 각 개인의 경험, 감각, 기억, 정보, 운동, 감정들은 인간-존재 전체에게 타당하며, 자기 실존의 불안은 현상적인 객관성에 의해 희석된다. 그리하여 매트릭스 안에서의 인간-존재는 -- 특정한 매커니즘에 따라 해석되거나 움직이는 무언가가 아니라 -- 전체 시스템을 위하여 존재하는 하나의 가상체이고, 매트릭스 바깥 기저-현실 속에서의 인간-존재는 -- 모피어스의 직접적인 비유처럼 -- 생물학적 활동만이 허락되어 에너지를 생산하고 소비하는 자원일 뿐이다.

  이러한 인간은 기계들의 목적을 위해 존재한다. 그것은 프로그램의 생존을 위해 존재하는 수단이 되고 프로그램들은 위계화된 구조를 심화시킨다. 『블레이드 러너』에서 나타났던 인간과 인간이 만들어낸 창조물과의 관계가 완전히 역전되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 레플리컨트와 같은 생물학적 안드로이드는 존재하지 않는다. 실제 『애니매트릭스』에서 확인할 수 있는 전쟁 이전의 로봇들은 최소한 외형상 인간과 유사한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매트릭스』의 기계들은 자신들의 신체 매커니즘을 인간과 유사하게 만들거나 인간과 동질적인 방식으로 그것을 구현하려는 시도를 하지 않는다. 기저-현실에 존재하는 기계들은 인간의 모습보다 차라리 동물이나 곤충 -- 특히 갑각류 -- 의 모습을 닮았으며, 기본적인 신체 구조 역시 기계공학적인 베이스를 갖고 있다. 가상-현실에 존재하는 기계들의 경우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경우도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정신적-의식적 형태의 외관으로서 존재할 뿐이다. 아마도 인간-존재의 의식과 의식-외부를 분리시킨 이후에 기계는 더 이상 인간을 닮은 무언가를 생산할 이유가 없으며 자신의 하드웨어적 설계를 유기체적으로 구성할 어떠한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단지 인간의 외형을 따라하거나, 인간과 같은 유기체적인 요소를 복제한다고 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고려해야 할 것은 단지 자신들의 목적에 적합한 효율성이며, 그것은 시스템 내부에서 이루어지는 의식 활동을 통제함으로서 대부분 온전하게 달성된다.

  하지만 신체적-하드웨어적 활동으로의 발달이 크게 주목되지 않는 근본적인 원인은 『매트릭스』에서 의식적-정신적-소프트웨어적인 활동이 신체적-하드웨어적 활동보다 더 중요하게 다루어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여기에는 후자의 활동이 전자의 활동에 매우 강하게 의존한다는 생각이 흐르고 있다. 모피어스의 친절한 설명이 알려주는 것처럼, 이 영화의 저변에는 감각-대상과 감각-지각 데이터의 구분 불가능성, 즉 의식-외부에 실재하는 대상이란 그것을 향한 우리의 의식 내부 작용 이외의 방식으로 알려질 수 없다는 사실이 전제되어 있다.[각주:2] 이는 의식이 바라보는 의식-외부란 의식의 내적인 활동에 의해서 결정되고 수정되며 심지어 초월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반면 외부에서 의식 활동에 주어지는 유일한 한계는 그것이 지속되는 생명 활동을 정지시킬 수 있다는 것뿐이다. 그렇기에 매트릭스 안에서의 의식 작용은 기저-현실에 전면적으로 반영되지만, 기저-현실은 그로부터의 의식 활동 자체가 폐기되지 않는 이상 의식과 의식-외부의 가상적인 관계에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한다. 좀 더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매트릭스』에서의 모든 의식 활동은 의식-외부의 모든 한계를 초월할 수 있다. 이것은 매트릭스 시스템 구현의 원리이면서 동시에 그것의 한계를 규정짓는 원리이기도 하다. 즉 그것은 매트릭스가 인간-존재의 의식 활동을 가상-현실에 규제시키도록 기저-현실과 의식 활동을 분리시킬 수 있는 근거이면서 동시에 기저-현실로부터 침입한 의식 활동을 스스로의 법칙에 완전히 종속시킬 수 없는 이유가 된다. 실제로 매트릭스의 구조는 프로그램에 의한 일방적인 법칙들로 강제되어 있지만 그 속에서 나타나는 개인은 어디까지나 잉여적-자기-이미지residual-self-image에 의해서 결정되며, -- 한 개인이 더 이상 그 개인으로 존재하지 않을 때에만 그 개인의 자기 이미지는 파괴된다. 요원들은 한 개인의 모습을 한 채로 그들의 능력을 사용할 수 없다 -- 각 개인의 능력 역시 개인의 자각에 의해서 변화한다.

  그리하여 만약 인간의 의식 활동이 매트릭스로부터 소여된 한계가 절대적이지 않음을 충분히 인지한다면, 그럼으로써 자신이 속한 객관적 물리 법칙, 주어진 감각 정보들, 의식-외부의 대상성 등이 사실상 자신의 의식 내부의 활동에 종속되어 있음을 깨닫는다면, 의식은 의식-외부와 의식 활동의 내적 관계를 규정하는 시스템의 규정성조차 초월할 수 있다. 예컨대 눈앞에 존재하는 숟가락이 단지 자신의 의식에 의해 거기 있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그것의 형태를 결정짓는 일은 -- 그것을 구부리거나 펴거나하는 일은 -- 단지 스스로의 마음에 달려있음을 깨닫게 된다. 이것이 네오의 첫번째 각성이라 할 수 있다. '그The One'는 의식과 가상-현실의 상호 관계성을 초월하여 의식 활동 자체에 의해 새로이 그들의 상호 관계를 규정한다. 이는 매트릭스가 가상-현실임을 믿는 자들, 자신에게 주어지는 의식과 의식-외부의 관계가 사실상 의식 자체의 활동임을 믿는 자들에게도 어느 정도 나타난다.[각주:3]

  한편 의식 활동에 의한 의식-외부로의 접근은 보다 심각한 난제를 불러온다. 『매트릭스』의 마지막 부분에서 네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I'm going to show them a world without you, a world without rules and controls, without borders or boundaries, a world where anything is possible. Where we go from there is a choice I leave to you."

  그러나 네오가 말하는 '세계world'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 모피어스의 믿음과 오라클의 예언, 메시아의 존재 모두가 조작된 것이었음은 『매트릭스 : Reloaded』에서 이미 밝혀진다. 그것은 의식의 불확정성에 의해 필연적으로 소수의 각성자들을 포함하게 되는 가상-현실 시스템이 자신의 정합성을 위해 설치한 외부 통제 시스템이었을 뿐이다. 즉 의식과 의식-외부의 관계를 규정하기 위한 매트릭스의 통제 범위는 의식과 가상-현실을 초월한 기저-현실에까지 이른다. 물론 그러한 외부 통제 시스템은 『매트릭스 : Revolution』의 종결 이후 사라지게 될 것이다. 하지만 기계들이 인간들을 가상-현실로부터 해방하고 기저-현실에서조차 어떠한 제약을 가하지 않는 세계가 도래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또 하나의 외부적 통제에 의해 규제받지 않음을 확증할 수 있는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매트릭스 내부의 중력이란 단지 컴퓨터 프로그램일 뿐이다. 하지만 매트릭스 바깥에 존재하는 중력이 객관적이고 자연적인 실재 법칙이라는 사실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여기서 묻고 있는 것은 그와 같은 법칙과 한계들의 존재 여부가 아니라 그들이 각각의 의식에게 주어지는 바 그대로 존재하는 세계의 확증성이다. 매트릭스로부터 벗어난 현실 세계가 정말로 실재임을 어떻게 확증할 수 있는가? 기저-현실에서 이루어지는 의식 활동이 또다른 외부적 한계 속에 종속되지 않음을 어떻게 확증할 수 있는가?

  결론적으로 의식 활동에 의해서만 매개된 의식-외부의 경험들을 용인한다는 것은 의식-외부의 사실성 자체를 규정할 수 없게 한다. 왜냐하면 양자는 동일한 의식에 의해서 편향되는 것으로서, 가상-현실로부터 주어지는 경험과 기저-현실로부터 주어지는 경험의 구별 불가능성은 기저-현실의 경험적 사실성을 확증하는 것 또한 방해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공각기동대』의 문제, 즉 의식-외부에 대한 자기 의식의 실존성 문제를 역으로 적용하여 의식에 나타나는 의식-외부의 실재성 문제로 옮겨온 것이라 할 수 있다. 여기에 네오의 두번째 각성의 의미가 있다. 즉 그의 진정한 능력은 단순히 매트릭스가 보여주는 현상이 가상-현실임을 아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의식에 주어지는 가상-현실과 기저-현실의 구분이 사실상 아무런 차이가 없음을 깨닫는 데에 있다. 현상과 실재를 구분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것이 의식 뿐이라면,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현상과 실재의 일치성을 확보하는 것은 의식에게 어떠한 의미가 있을 수 있는가? 의식에 주어지는 바를 스스로의 의지로 믿는 한에서 누군가에 의해 의도된 프로그램과 자연적으로 존재하는 실재의 법칙 사이에 어떠한 간극은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존재의 의식에 있어서 가상-현실 속에서의 현상들과 기저-현실 속에서의 현상들 전체는 모두 극복할 수 없는 사실성의 부재를 내포하며 동시에 개별적인 의식에게 주어지는 동일한 실재이자 그 자신의 선택에 의해 존립하는 전체인 것이다. 역으로 말한다면 자의식을 가진 프로그램과 인간-존재가 의식과 의식-외부와의 관계 속에서 보여주는 내적인 산물들, 예컨대 이성, 감성, 욕구, 의지, 심리, 이론, 규칙 사이에도 결과적인 차이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행동 자체를 규정하는 데 있어서 의식으로부터 탄생하는 의지와 의식-외부로부터 산출되는 결과들의 종합은 동등한 의미를 지닐 수 있다. 여기서 비로소 『매트릭스』의 근본적인 선택이 나타난다. 하나는 가상-현실과 기저-현실, 예정된 조화와 개인의 자유의지, 기계와 인간-존재 모두에게 동등한 권리와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들 모두의 실재성을 거부하고 완전한 무의미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주지하듯 영화 속에서 전자는 네오에 의해서, 후자는 스미스에 의해 형상화된다. 따라서 네오는 단순히 인간만을 위한 영웅이 아니라 가상-현실을 구현하는 기계와 기저-현실에 기반한 인간 사이의 대립을 공존으로 변화시키기 위해 요청된 메시아라고 볼 수 있으며, 반대로 스미스는 가상-현실과 기저-현실의 모든 목적 및 의미를 거부하고 그들 전체를 파괴하기 위한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매트릭스 : Revolution』의 마지막 대화에서 다음과 같이 압축적으로 제시된다.

[Smith/Oracle] …Is it freedom or truth, perhaps peace - could it be for love? Illusions, Mr. Anderson, vagaries of perception. Temporary constructs of a feeble human intellect trying desperately to justify an existence that is without meaning or purpose. And all of them as artificial as the Matrix itself. Although, only a human mind could invent something as insipid as love. You must be able to see it, Mr. Anderson, you must know it by now!…"
[Neo] "Because I choose to."

  물론 그들은 단지 양 극단에 서 있는 인간-존재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며, 따라서 현상과 실재의 모호한 경계에 속한 인간-존재 일반의 존재론적 물음을 온전히 해결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아마도 네오의 희생 이후 매트릭스로부터 깨어난 사람들의 몫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1. 99년 제작된 『매트릭스』를 철학적 입장에서 접근한 텍스트는 수없이 많다. 개인적으로 너무 뻔한 해석들을 싫어하기는 하지만, 『매트릭스』 영화 자체가 워낙 노골적인 부분이 많아서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하에서는 『매트릭스』의 메시아-영웅 서사 구조에 대한 해석을 건드리지 않으려 노력했음을, 또한 보드리야르의 시뮬라시옹과 연계된 해석 역시 되도록 직접적으로 다루지 않으려 했음을 밝힌다. [본문으로]
  2. 의식 활동 자체를 규정짓는 것은 물론 뇌의 신경 조직에 대한 물리-화학적 법칙이다. 하지만 그러한 물리-화학적 법칙의 조작 자체가 정신적-의식적 수준에서 이루어지고 있음은 분명하다. 예컨대 매트릭스 안에서의 모든 지식과 신체적인 숙련은 외부로부터 전송되어 습득할 수 있다. [본문으로]
  3. 물론 이러한 믿음은 매트릭스 밖의 현실을 경험한 자들조차 쉽사리 갖지 못한다. 그러나 매트릭스 밖으로 나가보지 못했더라도 그것이 거짓임을 진정으로 믿는 자는 그 한계를 넘어설 수 있다. 『애니매트릭스』의 「World Record」에서 등장한 육상 선수 '댄'과 또다른 에피소드 「Kid's story」에서 '마이클 칼 포퍼'로 등장했으며 『매트릭스 : Reloaded』, 『매트릭스 : Revolution』에서는 '키드Kid'라는 이름으로 등장한 소년이 그 예이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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