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부인(自由夫人) : 욕망의 현실
Movies 2009/08/23 05:43
1950년대 한형모 감독에 의해 영화화된 『자유부인』은 몇 가지 주제에 관한 특이할만한 시선을 보여주고 있다. 물론 이 작품을 감상하는데 있어서 그것이 당대에 알려주었던 전통 가치관의 파괴 및 새로운 문화 현상들을 언급하는 것은 피할 수 없겠지만, 실로『자유부인』이 가진 매력이란 단순한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이는 영화가 표면적인 내러티브에 있어서는 극히 신파적인 내용임에도 -- 말하자면 유사 이래로 반복되어 온 주제인 사랑과 불륜 이야기임에도 -- 불구하고, 일반 가치의 해체가 가져오는 현상을 다소간 새로운 관점으로부터 그려낸다거나, 새로운 관점으로부터 해석된 일반 가치의 모순을 지적함으로써 이야기하려는 주제에 맞게 본래의 내러티브를 규격화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요컨대 이 영화는 다양한 가치 체계들, 서로 다른 의미를 탄생시키는 상이한 문화 형식들에 관하여 매우 직접적이면서도 냉정한 시선을 유지한다. 그렇기에 영화는 '자유'와 '부인'으로 각기 상징화될 의미-가치의 진정한 관계성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침묵하면서도, 그것이 어떻게 충돌하며 어떻게 다양화될 수 있는지에 관해서는 서로에게 병치된 사건들을 통해서 끊임없이 되뇌인다. 즉 이 영화에서 나타난 이른바 '불륜'은 선악의 문제로 판단되지 않으며, 그것의 정서적인 힘 자체가 훨씬 더 강조되어 있다.
영화의 한편에는, 음악이 흐르지 않는,최소한 그 흐름을 위하여 특정 계기를 요구하는 '방 안'과 그로부터의 역할을 각자 선험적으로 부여받음으로써 존재하는 '부인'이있다. 다른 한편에는 그 역시 또 다른 가치 체계의 일부로 편입되어 버릴 수밖에 없음에도, 이전의 공간과 일반적인 관계들을파괴하면서 '자유'를 부르짓는 '방 밖'이 있다. 인물들은 아마도 이 양자의 병립이 내적으로 모순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겠지만, 그러한 이해는 실제 사건들이 가지고 있는 강렬함에 의해 희석된 채 사건의 종결을 통해서만 비로소 표면으로 떠오른다. 다시 말해 서로의 관계가 종결되기까지, 관계를 이루었던 각 인물들의 욕망이 모두 사그라질 때까지, 인물들은 자신의 행동에 관하여 어떠한 의문도 갖지 않는다. 설령 그것이 나타났다고 하더라도, 이는 그 관계를 향한 인물들의 욕망에 비하면 이를 데 없이 초라하며, 매우 일방적이고 순간적인 잔향으로 곧 사라져 버린다. 영화에서 본래적으로 대립되어 있던 '방 밖'으로부터 '방 안'으로의 거리감 역시 -- 일차적으로 신춘호가 퇴장하면서 드러나긴 하지만 -- 불륜을 들킨 이후 '방 밖'으로부터 '방 안'까지 걸어오는, 그리고 그 경계인 '대문'에서 좌절되는 오선영의 모습에 의해 결정적으로 표현될 따름이다. 이와 동시에 가장 중심적인 인물이라 할 수 있는 두 사람의 행위 판단, 즉 오선영의 후회와 장태윤의 비난은 박은미의 일방적인 작별에 의하여, 신춘호의 떠남에 의하여, 백광윤 사장 부인의 편지와 목격에 의하여, 최윤주의 자살에 의하여 그 모든 사건들이 종결된 이후에서야 비로소 나타난다.
아마도 이 영화에서 지극히 동정할 수밖에 없는 인물, 다시 말해 지극히 엄격하고 전통적인 윤리적 판단 -- 물론 이것은 영화 외부로부터 이루어질 것이다 -- 에 의해 공감할 수 있는 인물은 오선영의 어린 아들인 장경수 밖에 없다. 그러나 다른 인물들이 이러한 판단으로부터 '자유로운' 것은, 판단을 가능하게 할 가치 체계의 다양성에 의해서가 아니라, 말그대로 가치 체계를 압도하는 시대의 흐름과 개인의 욕망이 전면에 부각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요컨대 여기서는 여러 가치들, 예를 들어 사랑, 자유, 돈, 가족, 전통 등의 상이한 가치들에 대한 개인의 판단과 선택이 무엇이어야 하는가가 중요하지 않다. 다만 그러한 가치들에 대한 욕망이 실제하며, 그 욕망에 의해 모든 일반 가치들의 선택과 결정이 선험적으로 담보될 수 없다는 점이 중요한 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