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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의 이름(The Name of Rose) : 이중적 세계





  사실 장르문학으로서의 "장미의 이름"은 꽤나 진부하다. 1980년이면 뒤팡은 130세를 넘겼으며, 세 마리의 눈 먼 쥐들은 25년째 달리고 있고,[각주:1] 샘과 필립의 하드보일드가 피를 흘린 지도 반세기가 지났을 때다.[각주:2] 그런 와중에 쿠르헤브의 밀실을 배경으로 홈즈와 왓슨의 예술적인 수사를 따라가다가 긴다이치식으로 마무리되는[각주:3] 이야기쯤은 그저 골동품일 뿐이다.

  그러나 -- 사실 '그러나'라는 표현을 쓰기 민망할 정도로 잘 알려져 있지만 -- 이 작품의 가치는 내러티브가 담긴 배경의 섬세함과 진지함에 있다. 작가는 중세 말기의 거대한 상징적 깊이 속에 이야기들을 감추고 또 그 깊이로부터 이야기들을 이끌어낸다. 즉 작품의 외형을 이룬 살인 사건은 기발한 트릭에 의해서가 아니라 현실의 모순 속에 철저히 녹아듦으로써 스스로를 은폐하며, 종국에 드러난 사건의 진실은 그 자체 모순된 세계로부터의 놀라운 반전성을 폭로하는 것이다. 결말은 따라서 한 명의 시리얼 킬러가 아니라 놀랍도록 깊이 새겨진 현실의 명암에 드리운다. 그것은 맹목적인 양들이 자라나는 세계의 왜곡을 드러내는 것, 즉 수도원으로 이름지워진 종교적-권력적 이데올로기의 닫힌 세계, 원죄와 교리의 이름이 살아있되 비루한 대중들에게만 적용되는 세계, 절대적 보편의 이상적 가치가 삶을 흑백논리로 뒤덮은 세계, 그들의 이면에 도달하는 것이다. 실로 범인은 처벌받는 대신에 -- 어떻게 세계를 처벌할 수 있는가? -- 스스로 전복된다. 그의 내부에서 타오르는 불길은 더 이상 유지될 수 없는 자신의 삶을 역설하고 예견된 종말을 전파하고자 한다.

  이에 도달하는 과정 자체도 이중적이다: 한켠엔 타락한 성직자들과 광기 넘치는 이단 심판관, 그리고 그들의 권위에 복종하는 아둔한 사제들이 있다. 다른 한켠엔 단지 살기 위하여 쓰레기를 구걸하고 몸을 파는 "인간들"이 있다. 그리고 그들 사이에 새로이 등장한 두 명의 이질적인 분자들은 어느 한 쪽에도 함몰되지 않고자 서로를 믿고 의지하고 격려한다. 그러나 그들 또한 서로 대립한다: 아드소는 진실을 이해할만한 지성을 아직 갖추고 있지 못하기에 악마를 두려워하고 권위에 무릎 꿇는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그는 종교인이 아닌 순수한 인간으로서, 인간이 지닌 어떤 관능적 진리를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윌리엄 역시 그것을 볼 수 있었으리라. 그는 실로 뛰어난 지성과 의지적인 판단력을, 그리고 무엇보다도 바람직한 종교적 균형감각을 지니고 있으니까. 그러나 그럼에도 그는 여전히 종교인으로서만, 말하자면 타락한 종교인들에 대비되는 올바른 종교인으로서만 존재할 따름이다. 그는 자신의 믿음이 사람들을 구원하리라 여기며 그러한 구원이 사람들에게 악용되거나 거부될 수는 있을지언정, 잘못된 것일 수는 없다고 여긴다. 따라서 윌리엄에게 있어 아드소가 느꼈던 그것, 인간이 종교의 이름으로 단죄받기 전부터 지니고 있었을 그것은, 존중해야 할 것이긴 하나 동의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 내적인 이중성은 외적인 세계와의 대립보다 훨씬 불분명한 동시에, 작품 안에서 해소되지도 않는다. 작품은 신을 닮은 거대한 탑이 내면을 휘감은 끝없는 미로를 숨기고 있었으며, 잊혀진 고전은 천년왕국의 반쪽짜리 운명을 그 시작부터 예언하고 있었음을 화려하게 -- 실로 모든 추리극의 오랜 미덕이 아닌가! -- 선포한다. 그러나 작품은 거기에서 윌리엄과 아드소가, 함께, 그리고 각자 도달하게 된 세계의 이면에 실제로 무엇이 있는지를 끝끝내 결정짓지 않는다. 이렇게 반쯤 덧씌워진 열린 결말을 통해 작품은 풍미를 더하고 있고, 그럼으로써 마지막까지 진지한 독자들과 비평가들을 성가시게 만드는 것 또한 잊지 않고 있다.




  1. Edgar Allan Poe, "The Murders in the Rue Morgue", 1841. and Agatha Christie, "Three Blind Mice", 1947. [본문으로]
  2. Samuel Dashiell Hammett, "The Maltese Falcon", 1930. 이 작품은 책으로도 유명하지만, 1941년에 제작된 험프리 보가드 주연의 영화도 걸작이다. and Raymond Thornton Chandler "Finger Man", 1934. 필립 말로우의 정식 등장은 1939년작 "The Big Sleep"이다. 이전 단편들은 본래 다른 이름이었다가 이후 출간 때 개명된 것이다. [본문으로]
  3. 긴다이치 코스케(金田一 耕助)는 요코미조 세이시(横溝 正史)의 소설에 등장하는 탐정이며, 국내에는 긴다이치 하지메(金田一 一), 통칭 김전일의 할아버지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이 인간들이 폭로한 범인들은 결국 죽는 경우가 많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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